대변이 급한데 화장실에 도착하기 전 새어 나온다면, 그 당황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변이 나와 속옷에 묻거나 변이 마렵다는 느낌은 들지만 참지 못해 옷에 실수를 하는 등의 일이 반복되어 힘든 나날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 ‘변실금’ 환자들이다.
일상생활이 힘겨운 ‘변실금’ 환자들변실금이란 대변 배출의 조절 장애로 인해 대변이 항문 밖으로 새어 나오는 질환을 말한다. 가스가 새는 비교적 가벼운 증상부터 대변 덩어리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흘러나오는 심각한 수준까지 그 증상이 다양하다. 대변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새어 나오거나 조절하지 못해서, 그리고 기침, 재채기, 방귀를 뀔 때 복부에 힘이 들어가면서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변실금은 노인 환자의 비중이 큰 질환으로, 2022년 기준 전체 변실금 환자의 71.3%가 65세 이상 노인이다. 노인은 주로 항문·직장의 노화로 인한 변실금을 겪으며, 이 외에도 항문 수술, 분만, 직장암 치료, 염증성 장질환, 신경 조절 장애 등에 의해 변실금이 발생할 수 있다.변실금이 생기면 항문 주변에 대변이 남아 항문 소양증, 피부 감염, 방광염 등이 생길 위험이 커진다.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점도 문제다. 대한대장항문학회가 변실금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환자들은 △외출이 어렵다 △냄새가 난다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는다 △기저귀 착용으로 자존감이 낮아진다 △성생활에 방해가 된다 등의 불편함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불편함은 대인기피증,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변실금 환자 증가세…인식 제고 필요해통계청에서 발표한 ‘2022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901만 8,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7.5%다. 2025년에는 20.6%로 높아져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인인구 증가세와 함께 변실금 환자 수도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5일 대한대장항문학회에 따르면 국내 변실금 진료 환자 수는 꾸준히 증가해, 2012년 6266명에서 2022년 1만 5,434명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대한대장항문학회 강성범 이사장은 “우리나라는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는 만큼, 노인들이 겪는 의학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대응 방안을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며 “특히 타인에게 알리기를 꺼려하는 변실금 같은 질환에 대해서도 인식을 바꾸고 정확히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하지만 여전히 변실금 자체에 대한 이해가 낮을뿐더러 증상이 나타나도 오랫동안 병원을 방문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 대한대장항문학회가 국내 변실금 환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변실금에 대해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5%가 “모른다”라고 답했고, 42.6%가 “증상이 생기고 1년이 지난 후 병원을 처음 방문했다”라고 답했다. 증상 발현 후 한 달 이내에 병원을 찾은 사람은 13.9%에 불과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닌 치료관리해야 할 ‘질환’당뇨, 고혈압과 같이 변실금도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변실금은 직장경 검사, 항문 직장 내압 검사, 근전도 검사 등으로 진단하며 바이오피드백, 대변 횟수를 줄이거나 대변경도를 호전시키기 위한 약물치료 등으로 치료한다. 항문 괄약근 성형술, 천수 신경 조절술, 장루 조성술 등을 시행하기도 한다.치료와 함께 설사를 유발하는 우유, 술, 매운 음식 등을 피하고 섬유질을 피하는 등 생활 습관을 관리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또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여 변비를 예방하는 것이 증상 완화에 도움 된다.대한대장항문학회와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개최한 <2023 대장앎 골드리본 캠페인 정책 심포지엄>에서는 관리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변실금 환자 및 소수 장애로 소외되고 있는 장루 환자들은 화장실에 장루용 변기나 세척 시설이 마련돼 있어야 하지만, 이런 시설이 설계돼 있는 곳은 극히 드물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최근 장루 환자들을 위한 화장실을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있긴 하지만, 이마저도 대형병원 몇 곳에 국한돼 있다.병원상처장루실금간호사회 김정하 회장은 “변실금 환자가 증상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대인 기피, 우울 등 정신과적 질환을 겪을 수 있는 만큼 빠른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장루장애인협회 전봉규 이사장은 “전 세계적으로, 누구든지 공공시설의 화장실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사회적 변화를 꾀하고 있다”며 “우리도 이런 변화를 적극 수용해, 변실금·장루 환자들이 마음 놓고 외출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